2014년 9월 28일 일요일

[ JMS정명석 목사님]정명석 총재에 관한 진실

정명석 총재에 관한 진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맹인모상[盲人摸象])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지적한 말입니다. 현대 사회는 그 착오를 극복하고자 비교적 다수의 의견을 종합한 통계(statistical reasoning)방식을 사용하니다만 그 역시 진실을 비추기에 한계가 없진 않습니다. 더욱이 현대 사회는 소수의 언론인이 여론의 판단을 유도함으로써 자칫 언론에 의해 다수의 의견도 조장될 수 있다는 약점도 내포합니다. 바로 정명석 총재의 경우가 그런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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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9년 동안 비도덕적인 종교인으로 언론에 소개되어 왔던 정명석 총재입니다.그러나 언론이 보여준 모습이 정명석 총재의 참 모습인지 일반인은 올바로 분별하기 힘듭니다. 정명석 총재에 대한 정보를 오직 언론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다양한 정보에 대한 접근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또 언론인들이 비교적 사회의 지식인층이라고 해서 그들이 보는 것이면 모두 코끼리의 전체 모습이라고 맹목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정명석 총재가 처음으로 이 사회에 소개된 것은 1999년 초입니다. 당시 서울방송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성추행, 성도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 말세론적 조교관, 통일교 아류 등 종교인으로서는 매우 수치스런 모습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 후, 정명석 총재의 세계 선교 활동으로 인해 서울 방송의 추적 취재가 진행되었고 이어 '도피행위'라는 딱지도 하나 더 붙었습니다. 우선 여기까지 일을 짚어보겠습니다.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가 주장한 내용 중 성추행에 관해서는 재판부에서 시비를 가리게 되었고 이후 정명석 총재는 세차례 귀국하여 검찰의 조사에 성실한 답변을 하고 무혐의로 재출국했습니다. 이로써 당시 제기되었던 성추행 의혹은 사실상 일단락되었습니다.

   방송 보도는 재연 화면과 얼굴을 가린 자칭 피해자의 자극적인 증언도 담아 매우 실감있게 구성을 했으나 재연 장면은 현실성을 벗어나 픽션의 인상을 남겼고 자칭 피해자의 증언 근거는 매우 미약했으며 그가 당사자인지의 여부도 불확실했습니다. 

   또 성도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 문제, 방송에서는 정명석 총재가 성도들에게 앵벌이를 시켰다고 하는 매우 과격한 표현마저 사용했습니다. 사회에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금전 문제입니다. 성직자의 성(性)과 금전 관계는 매우 자극적입니다. 여론의 폭풍같은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너무도 좋은 소재였습니다만 결국 이 주장도 근거가 없이 유야무야되었습니다. 본 단체의 회원 중 그 누구도 속칭 앵벌이에 동원되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종말론적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정명석 총재가 1999년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다고 강조하며 신앙에 몰입할 것을 종용했다는 식이었습니다. 종말론적 신앙관은 건전한 사회인으로 하여금 현실의 삶을 외면하고 내세에 전념하게 하여 사회 부적응자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신앙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방송은 그렇게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를 사회악으로 매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정명석 총재의 설교나 교리, 그리고 본 단체의 신앙 활동을 들여다보면 어느 곳에서도 종말론적 신앙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말세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가르치며 보다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신앙생활을 주창한 총재입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정명석 총재에게 종말론적 사교주의 이미지를 애써 덧씌우려 했습니다.

   서울방송은 또 정명석 총재를 통일교의 아류로 폄하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도에서 그런 평가를 내려준 사람은 정명석 총재를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본 단체의 교리나 신앙  신조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나 데려다가 증인이라고 세우고 전혀 공인받을 수 없는 사람의 말을 증거로 삼아 평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언론은 객관적인 자료를 재공하고 그 판단은 시청자가 하는 것이 정상적인 보도 태도일 것인데 말입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생활이며 체험에 바탕을 두는데도 언론은 바깥에서 흘깃 바라본 외양만을 보고 본 단체의 신앙을 판단해 버리는 오만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정명석 총재를 죄인으로 부각시키려는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정명석 총재를 향한 언론의 첫 접근은 객관성을 한참 비껴갔습니다. 당시 담당 피디는 객관성을 우지하기 위해 정명석 총재, 혹은 본 단체의 지도부의 의견을 반영하려했다 합니다만, 결국 본 단체는 법원을 통해 반론보도 판결을 얻어냈습니다.  이는 방송 보도 내용에 본 단체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또한 본 단체의 요청이 서울방송으로부터 묵살당했던 터라 법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더욱이 서울방송은 정명석 총재가 '십일 조(열의 하나)'에 관한 설교를 하던 중 '열의 하나 전도 해'라고 한 말을 '여자 하나 전도 해'라고 자막을 사용해 보도함으로써 정명석 총재가 여성에 집착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습니다.

   왜 이토록 서울 방송은 정명석 총재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집착했을까요? 물론 언론인에게 진실을 밝히려는 정의감이 있다는 것을 존중한다 해도, 당시의 취재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가지고는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사회의 '공공의 적'으로 이미지를 꿰맞춰야 하는 강박관념에 몰려 정도를 벗어났음을 감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명석 총재의 부도덕을 고발한다는 제보자의 주장은 언론인의 정의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한 단체의 지도자와 그를 상대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사람들. 이 둘을 비교하면 당연히 사회 정의를 꿈꾸는 젊은 언론인의 가슴은 소수의 약자가 뿌리는 눈물에 출렁거렸을 것입니다. 거기에 정명석 총재에 대해 악의를 품고 있는 그 소수의 조직적이고도 계획적인 움직임이 더해져 호사가들의 입맛을 다시게 할만한 특종으로 키워졌습니다.

   정명석 총재로부터의 성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얼굴에 마스크를 하고 기자회견을 자청한 여성들 앞에는 항상 김도형과 김영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피해자라는 사람들에게 정명석 총재를 공격하는 방법을 제시하거나 때로는 자신들이 직접 그들의 수장을 자임하며 정명석 총재 공격의 선봉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방법은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것들이었습니다. 욕설과 폭언, 입에 담기에 부끄러운 상스런 말들이 바로 그들이 보여준 내면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들의 인격이하의 행동들은 여러 차례 법원으로부터의 경고와 처벌을 받았습니다.

   정명석 총재에 대한 '성적 부도덕'이라는 공격.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명석 총재가 철저하게 대응하는 요소입니다. 본 단체의 신앙 생활의 원칙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성적 순결성입니다. 사라은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데 가장 고귀하고 핵심적인 요소인 만큼 올바로 알고 감당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에 눈을 뜨기 전에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을 바로 알고 신앙으로 사랑을 배우자는 것이 총재의 제 일의 가르침입니다.

   총재로부터 시작된 본 단체는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진리탐구의 열정이 많은 연령층입니다. 반면 가장 혈기왕성하고 명예와 성공에 대한 야망도 많은 때입니다. 바로 그런 젊은이들의 진리탐구 열정을 성경 말씀으로 채워주었던 총재였습니다. 혈기왕성한 청춘들에게 참사랑의 도를 가르쳐 일탈의 유혹을 다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도 자신의 야망과 사랑을 접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본래 총재와 함께 가는 길은 구도의 길이요 헌신의 길이 우선이나 젊은 혈기로 자신들의 야망과 욕정을 제어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총재를 따르며 야망을 성취하고 명예를 얻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총재의 가르침은 연륜이 깊어갈수록 선행과 헌신의 모범을 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자들은 결국 총재를 떠나기도 했고 자신들의 지난 세월들에 대한 상실감을 보상받으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총재의 성품과 본 단체의 체제에 대해 익숙했기 때문에 어떻게 공격하면 총재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바로 피해자요 제보자라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김도형, 김영수도 그들 중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목적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자 그 모든 탓을 총재에게로 돌린 그들은 돈으로 보상받고자 했음이 여러차례 드러났습니다. 지난 2005년에 김도형이 소위 피해 여성들의 고소 취하와 자신과의 화해 조건으로 정명석 총재에게 20억 원을 요구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는 애초부터 <반정명석 총재그룹>을 이끌던 김도형의 활동 목적이 결국 일확천금을 얻어보겠다는 야심이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며, 소위 피해 여성들의 고소와 취하 여부도 김도형 한 사람이 좌지우지할 정도로 그 여성들의 활동 역시 김도형의 목적에 부합하여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본 단체는 정명석 총재를 고소한 한 여성이 <반정명석 총재그룹>으로부터 '정명석 총재를 고소하면 유학 경비를 지원해 주겠다.'는 재의를 받았다는 정보도 가지고 있습니다.

   피고(서울방송)은 이 사건 화해권고결정 확정일 이후에는 프로그램 명칭여하를 불문하고 소외 김도형, 김영수의 직접적인 제보 또는 자료제공 등에 의한 원고(기독교복음선교회)측에 관한 방송을 제작, 보도하지 아니한다.

   이 문구는 2004년 본 단체와 서울방송사이에 이루어진 화해 권고 결정문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 동안 서울방송에서 주 취재원으로 활동했던 김도형 김영수의 본 단체에 대한 자료 제공이나 제보가 옳지 않았다는 것을 법원에서 판단하고 서울 방송에서 인정했다는 의미입니다. 그 동안 거의 모든 언론 보도는 바로 이 두사람에 의한 제보에 기초를 두었습니다.

   아울러 위 결정문에서는 서울방송이 본 단체에 관련되어 보도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대해서 48시간 전에 그 내용을 본 단체에 고지하고 보도 내용에 대해 5% 분량으로 본 단체의 반론을 방송하도록 명시되어있습니다.
   이는 해당 언론사의 임원의 고백대로 언론이 백기를 든 것과 같은 것이며 그 동안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에 대한 서울 방송의 보도 태도가 지극히 편향적이었음을 법원과 서울 방송 스스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03년에는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에 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김영수라는 사람이 당시 홍콩에 머물고 있던 총재의 집을 습격해 구타를 하며 이를 촬영해 언론에 제보하고 또한 인터넷에 유포하며 심각하게 총재를 조롱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서울방송의 <세븐 데이즈>에서는 이를 그대로 보도했고 본 단체의 회원들은 그 동영상이 심지어 인터넷 상에서도 유포되고 있는 사실을 알고 극도로 흥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단체의 회원들은 감정을 억누르며 신앙인의 본 자세를 굳게 지키려 하였으니 그 중 네 명의 대학생이 분한 마음으로 김도형과 김영수를 찾아갔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김도형과 김영수를 만난 자리에는 <시서저널>의 신호철 기자가 와 있었습니다. 신호철 기자도 역시 김도형 김영수의 제보를 토대로 정명석 총재에 대한 기사를 작성코자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호철 기자를 알아볼 턱이 없었던 본 단체의 청년들은 바로 김영수 김도형과 몸싸움을 하게 되었고 그 왖중에 <시사저널>의 신호철 기자는 그들과 한 패로 오인받아 몸싸움에 휘말렸습니다.
 
   물론 신앙인으로서 몸싸움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못된 일임을 변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도 같은 스승을 나이도 한참 어린 사람이 폭행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인터넷에 그 장면을 유포하면서 모욕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도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비정상일 것입니다.

   이런 악연으로 신호철 기자는 김도형, 김영수에 필적할 만한 반 정명석 총재 집단의 선봉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의 노골적인 자세는 그의 기사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일단 본 단체를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며 기사의 논조를 고착시켰습니다. 그가 홍콩에 정명석 총재가 거주했던 집을 사진으로 게재하면서 정명석 총재가 홍콩의 호화주택에서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정명석 총재는 사진에 게재된 집의 2층에 방 두개를 세를 얻어 쓰고 있었습니다. 기자의 붓놀림 하나로 지극히 검소한 삶이 지극히 호사스런 삶으로 탈바꿈해서 여론에 전달되었습니다.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되도록 정명석 총재를 부도덕하게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총재는 홍콩 이민국 감호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올 때 홍콩 달러 10만 불을 지불했습니다. 이는 한호로 약 천 만 원이 약간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호철 기자는 굳이 미화 10만 불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약 1억원의 금액으로 실제와 8배 정도의 차이가 나는 분명한 오보였습니다.

   물론 사안의 핵심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이 같은 언론의 의도적인 매도행위가 암암리에 정총재와 본 단체를 지속적으로 옭아매왔고 설상가상으로 이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정총재와 본 단체의 목소리에 귀 길울이지 않게 하는 소위 '왕따 만들기'의 효과를 톡톡히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본 단체와 정명석 총재에 대한 언론의 그 동안의 시각도 상당히 기울어있었음을 부인하기 힘들 것입니다. 정명석 총재에 대한 언론과 또 그 언론에 의해 형성된 여론은 처음부터 이렇게 부정적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 보도태로를 지금까지도 이어오면서 몇몇 언론은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명석 총재가 빨리 한국으로 돌아와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점잖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일반인에 보여주는 언론의 공명정대를 가장한 제스쳐일 뿐 이미 총재가 돌아오면 뭇매를 들이댈 삐딱한 몽둥이를 감추고 있음을 본 단체는 충분히 헤아리고 있습니다.

   정명석 총재는 1999년부터 세계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총재는 1978년 복음 사역을 시작한 때부터 20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하고 그 후로는 세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 시점이 바로 1999년 이었습니다. 그것이 공교롭게도 서울방송의 보도 시점과 맞물렸고 총재의 세계 선교는 마치 소송과 언론 보도를 피하려 했던 것으로 오인되었습니다. 오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정명석 총재가 1999년과 2000년 2001년 입국해 검찰 조사에 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 차례에 걸쳐 조사에 응하는 그 시간들은 정명석 총재에게는 참으로 소모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이미 세계 선교를 위해 헌신ㅇ르 각오하고 출국한 발걸음을 다시 돌이키기를 세 차례나 한 이상 더 이상 이같은 일로 무의미한 시간을 쓴 다면 본 단체에 큰 손해를 끼칠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한창 선교에 불이 붙은 외국 현지에서는 그나마 총재로부터 시작된 선교의 열정이 자칫 수그러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습니다. 정명석 총재에게 주어진 한 시간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20만 회원들의 삶의 방향이 뒤바뀌고 때로는 한 생명의 죽고 사는 문제까지 좌우되기도 합니다.

   이에 정명석 총재는 결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어떤 고소 고발로 총재의 발길을 잡아두려 한다 해도 거기에 일일이 대응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혹 여러가지 오해를 받고 누명을 쓰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소명을 이루는 것이 더 우선이었습니다.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단체의 수장의 위치며 또한 세속의 관심보다 하늘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사명자의 노정이었습니다.

   사람은 사명과 위체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판단의 가치기준이 다릅니다. 정명석 총재가 세상이 비웃음거리가 되고 불신과 모욕을 감내하며 자신의 길을 간 이유는 그가 진정한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정명석 총재 스스로도 어찌 오해를 벗고 싶지 않겠으며 타인의 찬사를 듣고 싶지 않겠습니까마는 자신의 오해를 벗기 위해 써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당장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료하는데 쓰는 것이 더 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영광과 당당함을 갈망하여도 당장에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듣고 처절한 험곡의 길을 택한다면 그가 진정한 신앙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의 큰 인물들 역시 보이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당당함의 길에 서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도 모르는 수치와 비굴함의 길을 간 선례를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로부터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축복권을 훔쳤다는 비난을 받으며 에서의 분노를 피해 다른 지방으로 달아나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관점과 하나님의 길을 가는 사명자의 관점은 너무도 상이했습니다. 하나님의 뜻 길을 가는 야곱은 사람들이 보이듯 치사하고 비굴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로부터 장자에게 전해지는 신앙 축복권을 귀하게 여겼던 사람이며 그 신앙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갈망으로 장자의 권한을 사모했던 것입니다. 반면 형인 에서는 물질에 치우친 사람으로서 당장 허기진 배를 채우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 권한을 쉽게 버릴 만큼 하나님이 주시는 신앙의 전수를 경시했던 사람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은 에서보다도 야곱을 주인공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형제들의 시기심으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그는 외국에서도 충성을 다 하는 삶을 살았으나 억울하게도 상전의 부인을 겁탈하려했다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 부인이 요셉에게 불륜을 요구했으나 요셉이 거부하자 부인이 자기의 부정을 덮기 위해서 요셉에게 죄를 덮어씌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누명을 쓰게 하면서도 요셉을 통해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뜻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엔 부정하고 비굴한 모습이지만 성경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지키기 위해 소리없이 모욕과 비난을 감내하며 갔습니다. 다윗이 그랬고 나아가 예수님도 그런 길을 가셨습니다. 그분들의 관심과 가치관은 사람의 정서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정서에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본 단체라고 해서 세상에서 영광스런 모습을 받아가며 갈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이 왜 불가능하겠습니까? 적당히 사회의 입맛에 맞는 관심사에 타협하며 총재와 단체의 안전한 성장을 도모할 방법도 찾을 수 있겠습니다만, 총재 역시 사람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입장이라 비난 받으며 내몰리고 누명 쓰며 투옥되는 전처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전라북도에 있는 대둔산은 본 단체의 수련원과 매우 가까운 거링 있으며 정명석 총재가 젊었던 시절에 자주 올라 기도도 하고 등산객들에게 길안내를 해 주던 곳이었습니다. 1991년 여름, 총재는 성도들과 함께 대둔산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산을 오르는 길이 매우 좁고 험하여 암벽 등반을 목적으로 한 전문 산악인들이 아닌 일반 등산객에게는 무척 위험한 곳이 많았습니다.

   정명석 총재는 등산을 하던 중에 길이 좁은 곳은 넓히고 경사가 심한 곳은 주변의 나뭇가지를 잘라 난간을 만들었습니다. 어느새 산 정상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잊은 채 등산객들이 자칫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로 하루 종일 길을 닦고 손잡이를 만들어 세웠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본 단체는 산림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하고 언론에는 본 단체가 산림을 훼손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땀 흘린 봉사의 대가는 이렇게 되돌아왔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개인이 임의로 하지 말고 관계 기관에 알려서 처리하도록 법저차를 밟았어야 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했더라면 총재는 굳이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또 괜한 시비에 휘말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절차를 밟아 합법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기약 없는 날 동안 험한 산길은 여전히 등산객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정명석 총재의 다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장 사람들이 해를 입을 수 있는 위험 요소를 보면 법의 절차를 기다릴 만큼의 여유를 버리고 사람의 안전을 위해서 뛰어듭니다.관계 기관이 사람의 생명보다도 산림범을 지키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면 정명석 총재는 산림법보다도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것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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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바로 사람의 생명이며, 그 생명이란 육적인 것만 아니라 정신적인, 영적인 생명까지 포함합니다. 총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신앙인으로서 사람의 영적 육적 생명을 가장 큰 가치로 두었습니다. 평생토록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어떤 어려움에 처할지 미리 가늠해 보기도 전에 열심을 내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명예와 부, 격식과 품격을추구하고 이해타산에 밝은 사람들과는 가치관이 다르고 행동 양식이 달라서 생긴 오해도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명석 총재의 해외 활동이 불법이라고 하고 도피라고도 합니다만, 총재의 행보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것과 사뭇 다릅니다. 총재가 한창 수련원 개발에 전념하고 있던 어느 날, 수련원 주변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수련원 개발 공사를 물리적으로 막는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수련원 개발에 매우 호의적으로 협조했던 마을 주민들이었던 터라 뜻밖의 행동에 총재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직접 주민들을 만나 이유를 들어보니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저 섭섭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당시 사태의 진정한 이유를 알고자 하나님게 깊은 기도를 했습니다. 결국 얻은 답은 전국에 있는 성도들의 삶과 마음을 살펴주는 일이 더 시급하니 수련원 개발을 잠시 멈추고 교회를 돌아보라는것이었습니다. 총재는 그날로 개발 작업을 멈추고 짐을 챙겼습니다. 그 날의 사건이 사람들이 보기엔 총재가 하던 작업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겠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정명석 총재의 발걸음을 이끌기 위해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정명석  세계 선교 역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계획하심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출입국의 모양새가 어떠한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범부의 관심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눈을 맞춘 사명자에게는 비난의  가시밭길이거나 영광의 면류관길이거나 모두 단순한 길의 의미일 뿐입니다.

   총재의 첫 발걸음은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기독교 국가들이 국가들이 즐비한 대륙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정작 총재가 경험한 유럽인들의 신앙은 전혀 기대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앙만ㅇ하고 성취하려는 열정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생활 속에 한 습관으로 굳어져 버린 기독교의 형식만 남아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았던 유럽행이었지만 기독교 현실을 목도한 정명석 총재는 하나님의 뜻을 눈치 챘습니다.
20년 전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혈혈단신으로 유럽대륙에서 죽은 기독교에 생기를 불어넣기를 각오했습니다. 동양인으로서, 어리디 어린 유럽 젋은 아이들의 경시와 홀대를 무릅쓰고 다가서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진심과 사랑으로 다가선 지 한 해가 지나서 드디어 열매를 맺었습니다. 프랑스, 독일, 이태리, 영국. 이 네 개의 나라에서 동서양의 젊은이들이 모여 민간 차원의 문화 예술과 스포츠 교류로 평화 대회를 연 것입니다.

   평화 대회는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정부나 기업에서 목표를 두고 하는 일도 아닌데, 그저 아시아의 한 초로의 신사가 다가와 어울리며 웃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동서양의 젊은이들이 해마다 자바적으로 모여 서로 속 깊은 정을 나눌 수 있을까? 향략도, 퇴폐적인 방종도 없는 건강한 교감이 이 시대에 이렇게 가능한가? 총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증언했고 그들의 가슴 속에 뇌사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하나님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에서 기념적인 발자취를 남긴 후 중국으로 향한 정명석 총재의 행로는 21세기의 잠룡을 다스리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정해졌습니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세계 인구의 20% 이상이 모여사는 나라, 세계 경제와 외교 판도를 쥐락펴락할 만한 힘을 키우고 이는 나라, 그래서 모두 관심을 갖고 모여드는 나라가 바로 중국입니다. 그러나 정작 총재가 바라본 것은 중국의 힘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삶이었습니다. 교세를 늘려보겠다거나 경제 발판을 다져보겠다는 시시콜콜한 관심이 아니라 13억의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관심이었습니다.그래서 총재는 중국에 있어야 했고 그들의 삶의 현실을 낱낱이 들여다보아야 했습니다.

   속 족은 이는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나 활동할 것이지 굳이 오지랖 넓게 종교성도 없는 남의 나라까지 가느냐고도 할 것입니다만 이는 성경 한 구절조차 읽어보지 않은 사람의 단견입니다. 구약 성경 요나서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니느웨의 백성들을 위해 선지자 요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그들을 회개시켜 멸절의 위기를 벗어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 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정명석 총재에게도 중국인은 세계의 관심을 끄는 민족이라거나 선교의 대상이기 전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귀한 사람들이어서 의미있었던 것입니다.

   정명석 총재를 따르는 본 성도들은 20만회원이라는 단체의 규모에 위안을 받고 갖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단체보다 자유롭다는 것도,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도 총재를 따르는 이유로 삼지 않습니다. 세간에 잘못 알려진 총재에 관한 루머가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더욱 아닙니다.

   본 성도들은 정명석 총재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알았습니다. 그의 말씀이 지금껏 경험했던 어떤 종교가나 학자의 이론보다도 하나님에 대해서 더욱 정확하게 밝혀주는 말씀인 것을 알았고 그의 가르침이 인생을 바로 인도하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능력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보며 총재 스스로가 그 말씀대로 살아왔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론 또는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들, 그리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명석 총재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서 안다고 하겠으나 본 성도들은 정명석 총재를 오랫동안 만낫고 상담을 했고 그의 기도를 받으며 살아왔던 경험으로 안다고 말합니다.
정명석 총재에 관한 진실3.jpg
   본 단체 회원들은 모두 이 사회에서 당당한 직업을 가지고 건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에 어려움이 닥치면 솔선수범하여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술과 담배, 마약이나 불건전한 성문화 퇴치에 앞장서는 모범적인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지 도덕적인 양심을 따른 것만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이루며 사는 것이라는 총재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무분별한 정보 유출 사고로 인해 검게 채색되어진 정명석 총재의 참 모습은 건전한 시민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스며든 마녀사냥의 찌꺼기를 닦아낸 후에야 비로소 바로 보일 것입니다. 언론이 스스로 주장하듯이 진실을 바로 알리기를 원한다면 정명석 총재에 대해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편향적인 정보 유출을 멈추고 오염물질을 제거하여 진실을 투명하게 분별할 수 있도록 지극히 객관적인 자리에 멈춰 서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정 능력을 가진 거대한 바다에 유화제를 뿌려 2차오염을 일으키는 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언론은 정명석 총재에 대한 성급한 판단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2014년 9월 27일 토요일

[JMS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개성과 재능의 사명이다

【말씀 】정명석 목사
【본문 】이사야11장 3-9절
3)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6)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마태복음 25장 15절15)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쌀, 보리, 밀, 수수, 조, 각종 콩, 팥 등 <곡식>들을 보면, 생긴 대로 각각 '개성'이 다릅니다. 그 개성대로 '모양'도 '특성'도 다르고, '맛'도 '영양가'도 다릅니다.

이처럼<사람>도 그러합니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개성'이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재능'이 다릅니다. 자기만의 <개성과 재능>이 있습니다.

<개성과 재능>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자기>는 지구 세상에서 딱 한 명뿐인 '개성체'로 태어났습니다. 그 터전 위에 '재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고로 그 '재능'을 발휘할 사람도 세상에서 자기 한 명뿐입니다.

자기에게 속한 개성과 재능의 일에 있어서는 '자기'가 왕이고, '자기'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개성과 재능>을 '자기 희망과 재산'으로 삼고, 개성과 재능대로 행하면서 살아야 됩닏. 그러면 성공합니다.

<개성>은 개발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세상을 잡고 흔드는 자들을 보면, 모두 자기 '개성과 재능'을 더욱 개발해서 행합니다. 그러니 그 센터의 일은 다른 사람은 못 합니다.

자기 개성대로 더욱 개발하면, 자기가 원하는 일은  꼭 성공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해야 됩니다.

모두 오늘 말씀을 듣고 <자기 개성, 재능, 특성>을 구하고 찾아 끝까지 행하여 '개성의 왕'이 되길를 기도합니다.

2014년 9월 9일 화요일

[JMS정명석 목사 소식] 뉴스 웨이브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총재, '회화작품'전시회 열려

종교가로서 예술 흡수한 작가...장르의 벽 허물고, 미적 화합 꾀하는 실험정신 돋보여


▲왼쪽상단작품:2011년 국제 아트페어전에서 대표작으로 선정돼 세계인의 찬사를 받은 <운명>그림으로 표현했다. 이 그림의 모든 선을 보면 베토벤의 '운명곡이 그대로 나타나 보이기도 한다. 위는 강하게, 밑에는 슬픔으로 약하게 그렸다. 오른쪽 작품: 야자수 작품. 이질적인 것을 화개시키려는 작가의 의지는 붓글씨를 회화의 한 요소로 끌어들이게 된다.
왼쪽 하단 작품: 기교의 조합이나 군더더기 장식을 절대한 손무 작품들, 작가의 사상이 담긴 시편을 그림에 곁들이기도 했다.


​삶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삶이 되며 신과의 교감을 통해 창조된 예술작품의 세계는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종교가로서 예술을 흡수해 형식과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롭고,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작가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작가는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총재. 그의 회화 작품 전시회가 충남 금산군 월명동 구상미술관에서 지난 2월 21일 부터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정명석 총재가 그 동안 주로 그린 야자수와 기암절벽, 소나무 작품 외에 다수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예수를 알아야 예술도 할 수 있고, 삶도 온전한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라는 작가의 예술관을 담아, 그의 작푸메는 이러한 철학이 배어 있으며 진리를 체득함으로써 누리게 된 자유로움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은 2011년 국제 아트 페어전에서 대표작으로 선정돼 세계인의 찬사를 받은 <운명>이다. 강자 ㅇㅍ에 약자의 운명을 그린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인데 작가는 "성자 예수의 구상을 받았으며 영감으로 주님이 보여 줏서 순간 숨도 안 쉬고 그렸다."라고 밝혔다.

작품<운명>을 보면 죽음의 벼랑에 있는 이 달팽이는 황새가 제일 맛있게 먹는 밥이다. 아무도 이 달팽이가 산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황새도 역시 물론 "넌 내 밥이다. 콕 찍으면 끝난다."했다. 그러나 달팽이만 "나는 산다."하고 죽으메 굴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죽음을 피해가고 있다. 달팽이는 아무리 빨리 가도 황새 앞에는 초침 앞의 시침의 속력이다. 하늘에 운명을 맡기고 사는 자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생명은 제 맘대로 못 하고 운명은 천명(天命)임을 알리는 뜻이 차고 넘치는 그림이다. 포기하면 죽는다. 패한다. 의식 맑 끝까지 행해야 한다는 것을 형상화 했다. 이 그름의 모든 선을 보면 베토벤의 '운명'곡이 그대로 나타나 보이기도 한다 위는 강하게, 밑에는 슬픔으로 약하게 그렸다.

그의 그림에 등장ㅎ는 소재들은 산과 바다, 해와 새, 나무와 바위 등 흔히 자연경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 ㅅ재가 화폭 위에 형상화된 모습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이는 그가 제도적인 교육이나 육체에 국한된 감각 체험이나외적 질료에 매이지 않고, 신과의 교감을 통해 자유롭게 연상하기 땜ㄴ이다. 또한 시각 너머의 본질적인 형상을 포착하려는 부단한 도전의 산물로 이해된다. 곧 신과 맞닿은 고도의 정신을 표상한 것이다.

그는 특정모델의 복젤ㄹ 뛰어 넘어 작가 자신만의 새로운 예술 공간을 자유롭게 창조해 나간 작가다. 그러나 그 자유로움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인간의 무지와 착오로 일그러진 세상이나 미완성된 인간을 묘사하기보다, 창조주가 지휘하는 이상세계와 진리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이미지로 조형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겔(HEgel,Georg Wilhelm Friedrich)은 이에 관해"유한한 인간의 최대 관심사인 '신적인 것'을 총체적 진리로 의식하게 하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하는 예술이 예술로서의 최고 과제를 수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과 인간의 거리 지우고, '조화'라는 완전미 실현한 그의 대작들 만날 수 있어, 그의 작품에서 존재물에 대한 사실주의적 복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각 사물에 역동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어 어떤 대상을 암시하면서, 동시애 그것이 하나의 지시대상에만 종속되지 않도록 독립적인 영역을 확보한다. 어굴을 조형한 작품만 보더라도 단순한 선이 만들어 낸 인간의 형상 안에 공의로운 신의 자태가 엿보이는가 하면 인자한 예수와 패기 있는 독수리가 오버랩이 되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베냐민이 언급한 '예술의 아우라'를 발견할 수 있다.

​소나무 작품들 역시, 기교의 조합이 군더더기 장식을 절제하고 '용틀임하는 소나무','우람한 풍채의 소나무','암벽에 뿌리박고 서 있는 소나무','산 정상에 앉아 있는 소나무'등 독특한 조형들을 선보인다.

또한 바닷물과 바닷바람 속에서도 건재하여풍치와 열매를 자랑하는 야자수의 다채로운 형상들, 먹이사슬에서 약자인 달팽이가 강자인 황새에 맞서는구도 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작품들에는 작가가 겪은 삶의 우여곡절이, 완성미를 향한 몸부림의 숨결이, 승리의 함성이, 인생의 지침과 함께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편, 바다를 둘러싼 기암저벽, 그 위에 뿌리내린 상록수, 하늘을 나는 갈매기, 떠오르는 붉은 ㅌ양, 배를 타고 질주하는 사람들을 한 폭에 담아낸 일련의 수묵담채화들은 산과 바다,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의 거리를 지우고 그야 말로 '조화'라는 완전미를 실현한 그의 대작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에는 역사의시대적 흐름과 인간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무수한 시간들이 내재돼 있다. 또한 일필휘지로 그린 선의 굴곡이 약동하는 자연의 리듬감을 살려 내어 회화 안에 음악성을 더했으며 이는 생동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낸다.

게다가 이질적인 것을 화해시키려는 그의 의지는 붓글씨를 회화의 한 요소로 끌어들이게 되는데, 작가의 사인(sin)으로 대상을 형상화 하거나 작가의 사상이 담긴 시편을 곁들인 그림들이 그러하다. 과감하게 장르의 벽을 허물고, 미적 화합을 괴하는 실험정신은 예술의 우위를 점하는 작품들을 남기게 했다.

​이처럼 신의 웅장한 창조 세계를 대상으로 삼고, 영적인 심미안으로 통찰해 신비롭고 아름답게 표현한 그의 작품은 무엇보다 영혼을 울리는 힘이 있다. 신을 대면하게 하고, 존재 탐색의 길을 열어 영원한 생명을 획득하도록 이끄니, 보는 이들은 그 가르침에 공명(共鳴)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종교가로서 예술을 흡수했다. 삶을 책임지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며 예술의 경지에 오르도록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대단히 가치있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의 예술세계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라는 성서의 구절로 관통된다. 신과의 교감, 신과 맞닿은 고도의 정신을 표상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종교와 예술의 진정한 합일을 통해 이뤄 낸 최고의 예술을 목도하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한편, 이번 전시회는 작가의 회화 작품세계와 그 변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소나무 작품의 경우, 그가 환경과 여건이 되지 않는 가운데도 어려움을극복하고 예술혼을 불태워 완성했다고 한다. 또, 기암절벽 작품에서는 계속 연구하면서 새롭게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루 전에 단체로 사전 예약을 하면 미술관 직원의 상세한 작품설명과 함께, 안내를 받ㅇ며 관람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고, 수요일은 휴관한다.

정명석 총재는 그 동안 국내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도일, 아르헨티나 등에서 그림과 서예 작품 다수를 전시하면서 예술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 왔다. 그는 1995년 월간<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해 시인으로도 활동해 왔으며 지난 해 7월에 발단된 시집 『시의 여인』과 『시로 말한다』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한국 시문학 100년사를 총망라한 <한구 시 대사전>(2011)에 시 10편이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는 <구원의 말씀>,설교집 <생명의 말씀>,잠언집<하늘말 내말>이 있다. 50여 년간 성경 연구를 지속해 오면서 현재 기독교복음선교회 총회장으로, 국제문화예술평화협회 총재를 역임하고 있기도 하다. 

기사원문: http://www.newswave.kr/sub_read.html?uid=282316§ion=

정명석 총재, 교도소 호화생활 보도 허위 왜곡

정명석 총재, 교도소 호화생활 보도 허위 왜곡
박범계 의원의 보도자료는 허위 왜곡 날조된 제보에 의해 작성된 보도자료
 
 


 
2013. 10.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범계(민주당. 대선 서구을) 의원의 대전 고검에 대한 국감에서 주장한 본 기독교복음선교회(속칭 JMS)의 정명석 총재의 호화로운 수감생활에 대한 배포 자료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닌, 과장 왜곡된 제보에 의한 허위사실임이 알려졌다.
 
박범계 의원이 배포한 국감 자료에 나온 내용 중 수감 전, 건강한 신체에도 불구하고 4년간 17차례 외부진료를 받았다고 했으나,정명석 총재는 수감생활 중 외부진료 등 특혜를 받은 적이 없고, 다만 외부진료는 고령(69세)의 연세와 6년이 넘는 수감생활 기간 동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잇몸 의 질환이 심하여 식사 등의 제한을 가져와 수감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여 치료를 받은 적이 있으며, 이것도 현재 수감되어있는 장소의 치과치료 설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법규가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수시 접견 통해 ‘주일말씀’ 302차례 전달, 교도소내 사각지대서 수시로 휴대폰 통화를 했다고 했으나, 이 또한 정명석 총재는 수시 접견 통해서 주일말씀을 전달한 적이 없고, 교도소내 사각지대서 수시로 휴대폰 통화를 한 적이 없으며, 이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전해졌다.
 
접견은 기결수에게 정해진 정기접견과 교도소장의 권한내에서 이루어지는 극히 소수의 특별접견을 했을 뿐이고, 주일말씀은 정명석 총재가 교도소내에서 자필로 기록한 설교 원본(필사본)을 정상적인 우편수발계통을 통해 이를 책임자가 우체국으로부터 받아 워드작업을 하여 설교에 활용했다고 한다.
 
또 내부 선교회 인트라넷에 탑재하여 올리는 것으로 박범계의원이 주장하고 있는  ‘형의 집행 및 수형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위반한 사실이 없으며, 또한 교도소내 사각지대서 교도관 3인으로부터 수시로 휴대폰을 빌려 휴대폰 통화를 한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JMS 신도인 변호사(일명 집사 변호사)가 수시로 정명석을 접견·녹음해 교단에 전달하고 있다고 했으나, 정명석 총재는 2010년부터 선교회의 반대 악평자들로부터 수건의 무고(결국 이 모든 건은 2012년 검찰 조사에서 모두 무혐의로 종결)를 당하였고 이의 변호를 위해 담당 변호사가 법에 규정되어 있는 바와 같이 접견을 한 것이라고 한다.
 
수형인이 무고를 당하여 정상적인 변호사가 선임되어 법에 관련된 사항을 의논한 것이지 녹음해서 교단에 전달한 일은 없고, 이는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라고 전했다.
 
끝으로 외부 병원진료 명목으로 수시로 외출해 교인들과 접촉했다는 내용은 외부 병원 진료 시 정명석 총재는 교도소 규정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었으며 이 사실을 외부에 유출될 수도 없는 보안 사항이므로 수시로 교인들과 접촉한 사실이 없으며, 만일 외부 진료 중 교인과 접촉했다면 누가 언제 접촉을 했는 지 이때 호송한 교도관들은 누구인지를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뉴스웨이브) news@newswave.kr
 
기사원문:  http://www.newswave.kr/sub_read.html?uid=271894&section=sc2&section2=

JMS정명석 총재 사건, 사회문제인가 종교전쟁인가


 

「진실의 판명은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십자가의 길을 갈 뿐」


최근 탈퇴자들의 기자회견 및 관련 보도로 기독교복음선교회(총재 정명석) 사건이 다시금 관심을 끌고 있다. 일명 ‘JMS 사건’은 1999년 반JMS조직의 제보로 언론에 보도돼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10년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2009년 4월 23일, 정명석 총재가 10년 형을 받음으로써 일단락된 사건이다. 작년 11월부터 등장한 선교회 탈퇴자들의 조직 ‘JMS 피해보상대책협의회(이하 피대협)’는 선교회와 정 총재에 대한 집단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잊혀져가던 JMS 사건을 다시 들춰내고 있다. 기독교복음선교회는 언론의 오보로 인해 JMS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JMS는 Jesus’ morning star의 약자로서 예수님의 새벽별이 되자는 신앙운동을 뜻하며 공식적인 단체명은 아니다. 본 기사에서는 ‘선교회’로 표기하되 문맥 상 필요 시 ‘JMS’로 표기한다.
 
 
▲ 정명석 기독교복음선교회 총재
 
피대협의 주장은 과거 반JMS의 주장과 대동소이하며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선교회 정명석 총재에게 측근들이 조직적으로 성상납을 해왔고, 현재도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 총재의 사주로 선교회가 조직적으로 반대자들을 테러해왔으며 정 총재가 현재도 테러를 사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대협은 언론보도 및 시위 등을 통해 사회문제로 여론을 조성하는 한편 선교회 측에 집단피해보상을 요구해왔으나 선교회가 이에 응하지 않자 다수의 고소, 고발, 진정 건을 쏟아내고 있다.
그 사이 피대협의 주장을 보도한 몇몇 언론사는 정정·반론보도를 했다. 한 언론사는 피대협의 주장을 그대로 담아 옥중에 있는 정 총재가 현재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보도해 정정보도와 함께 명예훼손에 대한 유감표명을 하기도 했다.
 
현재 이 사건을 주로 보도하는 언론사는 일부 기독교언론들이다. 메이저 언론사들은 신중하게 사건의 귀추를 주목하는 눈치다. 피대협의 주장을 뒷받침할 뚜렷한 증거가 없고, 몇 가지 모순점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1999년부터 JMS 사건을 보도해온 SBS 방송이 손해배상 및 방송보도금지청구 소송에서 화해권고결정과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이유도 있다.
 
 
 
▲ 천국성령운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최우선’으로 하자는 신앙운동으로서 어려움을 딛고 새로운 부흥의 전기를 마련했다. 2009년 7월 1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1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기독교복음선교회 천국성령운동 집회장면. 

몇몇 언론들은 피대협 대표 김진형(가명) 씨가 사기죄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사실, 기독교 정통교단에서 가짜 목사안수증을 받은 의혹 등을 폭로하며 김 씨의 여론몰이에 동조하지 말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피대협, “JMS 사건은 사회문제다” vs 선교회, “근거 없는 여론몰이다”
 
피대협 대표 김 씨는 테러 위협과 미행을 당했다는 주장을 지난 2월부터 언론에 제보해왔다. 그러나 김 씨가 정 총재를 살인교사 혐의로 고발, 진정하고 미행자로 추정되는 자들을 남양주경찰서에 신고한 사건은 4월 2일, 무혐의로 수사가 종결됐다.

 
▲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오직 하나님께 호소라라는 정 총재의 가르침에 따라 나라의 위기를 하나님께 호소하는 구국기도회 모습. 정 총재의 투옥 이후 또다시 위기를 맞은 선교회는 지난 3월 1일부터 40일간의 '에스더 기도'에 이어 70일 작정기도를 하고 있다. 

한편 선교회 반대자를 폭행하고 9년 동안 도망 다니다가 최근 자수한 탈퇴자 민모 씨는 3월 28일 기자회견에서 “정 총재가 테러교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민 씨는 3월 13일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선교회 김 아무개 목사의 지시로 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가 3월 28일 김 아무개 목사와 함께 기자회견에 나와서는 “정 총재가 교사했다”고 말을 바꿨다. 구체적인 테러교사의 근거에 대해서는 “정 총재의 교사를 받은 이모 씨가 테러 제안을 했으며, 자신은 정 총재의 정확한 교사가 아니라 ‘기도해주겠다’는 격려전화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민 씨가 지목한 이 씨는 이미 법원에서 정 총재의 지시가 아닌 자발적 범행으로 밝혀져 2006년 7월 20일 2년형을 받고 형기를 마친 상태다. 당시에도 반JMS 활동의 주동자들이던 고소인과 김도훈(가명) 씨는 배후를 밝혀달라며 법원에 진정서를 넣은 바 있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민 씨는 증거도 없이 정 총재가 테러를 지시했다고 주장한 셈이다. 그런데 기자회견 전후 기독교 언론들은 일제히 “정 총재가 탈퇴자들에 대한 테러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하면서 민 씨의 ‘주장’을 ‘사실’화했다.
 
또 다른 피대협 회원 장모 씨는 자신의 두 딸이 가출해 현재 선교회 측 교회에 다니고 있다며 1인 시위를 벌이다 선교회 측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선교회로부터 일방적으로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장 씨의 주장은 여과 없이 기독교언론에 보도됐고, 또 다른 이슈로 번질 기세다.
 
 
 
▲ 1999년부터 반JMS조직이 언론의 왜곡·편파보도로 여론몰이를 하며 선교회와 정 총재에게 돈을 요구해온 증거들. 정 총재는 10여 년간 무수한 고소·고발을 당했지만 자신은 한 번도 상대를 고소·고발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장 씨의 주장과 달리 장 씨의 두 딸은 2년째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두 딸은 “부모가 피대협 대표 김 씨의 사주로 회사까지 그만두고 시위를 하고 있다”며 “부모가 원하는 대로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으니 시위를 중단시켜 가정의 평화를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장 씨는 2010년에도 “JMS 때문에 딸들이 가출했다”며 1인 시위를 했다. 그런데 실제 경찰조사 결과 딸들은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강제개종교육으로 가출한 사실이 밝혀져 여성보호센터에서 보호받기도 했다.

선교회 측은 장 씨가 많은 청소년들이 오가는 학원주변에서 선정적인 사진과 문구를 붙여 놓고 1인 시위를 하면서 지나가던 여성들에게 “너 창녀지? 얼마 받고 몸 팔았냐? 더러운 ×” 등의 심한 욕설과 모욕적인 발언으로 주민들의 항의를 받았으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행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의하던 선교회 여성 두 명과 실랑이를 벌인 적은 있으나 몸싸움이나 집단 폭행은 전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사건은 현재 송파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

피대협의 주장은 선정적인 가십거리가 될 만한 요소를 갖고 있어, 세간의 관심을 끌어 모으기에 좋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가 없어 보여 법정공방이 진행되더라도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선교회 측은 과거에도 반JMS조직이 증거 없는 여론몰이로 재판에 영향을 끼쳤다며 이번에도 같은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선교회는 정 총재에 대한 판결이 돈을 노리고 허위제보를 한 반대자들로 인해 억울하게 내려졌다는 입장이다.

갈등의 원인은 ‘돈’

선교회 측과 피대협 측의 갈등은 ‘돈’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피대협은 정 총재가 대법원 판결로 범죄자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속아서 바쳤던 헌금을 돌려주고 피해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선교회 측은 탈퇴자들 대부분이 정 총재 재판 이후에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이고, 재판이 끝난 지 3년이나 지난 지금 와서 속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 선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30여 년간 엄격한 도덕적 생활과 사회봉사활동을 실천해왔다. 월명동 수련원에서 경로잔치를 하는 모습 

특히 선교회에 따르면 피대협 대표 김 씨는 거액의 채무를 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정 총재가 수감 중인 점을 이용해 허위 주장을 퍼뜨리며 언론을 무기로 자신의 돈 문제를 해결하려는 속셈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김 씨는 작년 10월 12일, 채무자들에게 채무 변제 약속을 하고 고소취하 합의서를 작성한 사실이 있다. 김 씨는 지난 4월 20일, 공갈·협박·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다가 현재 광주북부경찰서의 수사를 받고 있다.

과거에도 정 총재의 재판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반JMS조직이 돈을 요구했던 사실이 폭로돼 재심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2010년 2월 몇몇 언론들은 반JMS 주동자들이 2005년 11월 17일 선교회에 20억을 달라고 요구했던 녹취록과 1999년 11월 15일 작성한 반성문, 2005년 3월 17일, 7월 21일 작성한 사과편지를 공개했다.

반성문은 “정명석 총재님을 음해하고 추문을 실어 불명예를 입히고 깊은 상처를 드린 점에 깊은 반성을 한다”는 것이었고, 사과편지는 “지금까지 오해를 하여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을 준 점을 사과드린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정 총재는 2005년 8월 3일 김 씨에게 답장을 보내 “사랑하는 애인도 싸우면 원수가 되는데, 예수님 말씀대로 싸우면 누구든지 원수 되고 마음 괴로운 것”이라며 “6년 동안 나의 근심과 갖은 고통이 되었는데, 나를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양심에 고백까지 해놓고 돈을 요구한다면 내 생각이 또 깊기만 하다”고 했다.

선교회에 돈을 요구하던 김 씨와의 협상이 결렬되자 2006년 4월 18일 김 씨는 중국에서 정 총재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들을 내세워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에서는 앞 다투어 정 총재가 중국에서 성폭행 사건을 일으켜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됐다고 보도했다.

정 총재는 반JMS의 제보로 중국에서 체포돼 공안에 구금되었다가 한국으로 송환됐다. 결국 정 총재는 객관적인 자료 없이 양측의 서로 다른 진술만 존재하는 상태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은 뚜렷한 증거 없이 법관의 자유심증에 의해 내려졌다.

JMS 사건, 종교개혁에 수반되는 종교전쟁인가

선교회 측은 정 총재 재판이 기독교의 마녀사냥에 상업주의 언론이 합세해 만든 여론재판 성격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교회는 기존 기독교와 다른 교리로 인해 이단으로 규정된 바 있다. 2000년 전 유대인들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된 예수가 증거 없는 여론재판으로 십자가형을 받았고,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이단논쟁이 수많은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했듯이,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정 총재 재판에 기독교의 입김이 작용했고, 이미 사회적인 여론으로 몰매를 맞은 상태에서 범죄자로 낙인찍힌 정 총재가 불리한 재판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는 설명이다. 선교회 관계자는 “정 총재 재판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청원서를 냈고, 반JMS조직의 주축이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고 말했다.
 
 


 
▲ 의료의 사각지대인 오지 산골과 장애우 시설, 노인요양시설 등에 무료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의료봉사단. 

기존 기독교와 배치되는 선교회의 교리는 선교 초창기부터 계속적인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중에서도 문제의 발단이 된 교리는 ‘창조타락론’이다. 창조타락론은 성경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을 이성범죄를 한 것으로 해석한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사랑하면서 창조법칙에 따라 성장한 두 남녀가 결혼을 통해 이성 관계를 해야 하는데 이를 어겨 형벌을 받았다는 얘기다. 선교회측은 이런 교리를 바탕으로 혼전순결을 주장해왔다. 기존 기독교는 선악과를 실제 과일로 해석하거나 여러 가지 비유로도 해석하지만 아직까지 일치된 견해는 나오지 않고 있다.

창조타락론은 피대협과도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피대협은 정 총재가 창조타락론을 이용해 메시아인 자신과의 성적 결합을 통해서만 깨진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어 의혹에 그치고 있다.

선교회는 “소문이 아닌 진실을 보기 바란다. 정 총재는 사랑을 통한 구원을 가르쳐왔지만 그 사랑은 하나님, 예수님과의 영적인 사랑, 정신적인 사랑이다. 정 총재는 그 사랑을 실천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사람’이지 ‘신’이 아니다. 30여 년간 가르친 설교영상과 문서가 그 증거다.”라고 반박했다.
 
 


 
▲ ‘지구촌은 하나님의 정원’이라는 사상으로 선교회는 태안 앞바다 기름제거 등의 국토환경 정화, 도시환경 미화 활동을 펼쳐왔다.



선교회는 “영적인 사랑을 육적인 사랑으로 착각한 이들이 잘못된 사고를 고치지 못하고 탈퇴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며 “오히려 혼전순결, 술, 담배까지도 금지하는 금욕적인 교리로 깨끗하고 도덕적인 생활을 실천하고 있는 선교회 수십만 신도가 사회적으로 매도를 당해 피해가 막심하다”고 호소했다.

돈 문제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이단논쟁과 결부된 JMS와 반JMS 간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종교 갈등은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한 기독교계 인사는 JMS 사건과 관련해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종교단체라고 해서 갈등이 없는 건 아니다. 여러 가지 갈등이 존재하고 돈과 관련된 갈등은 비일비재하다”며 “특히 돈과 관련되면 갈등의 골이 깊고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JMS 사건도 어느 한쪽이 완전히 물러나야 갈등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세계 50개국 회원교회가 생방송으로 참여하는 천국성령운동 집회 장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국경을 초월한 성령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회통합에 저해가 되는 기독교의 이단논쟁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유대인 율법학자였던 가말리엘 율법사의 조언이 인상적이다.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 선교회 본부가 있는 충남 금산의 월명동 자연성전. 건물이 없는 잔디밭과 돌 위에서 수만 명이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든 발상은 선교회의 개혁적인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JMS정명석 목사의 나만이 걸어온 길8] 죽자니 청춘, 살자니 고생


햇볕은 따갑게 내려쬐고 땅에서는 더운 훈김이
마치 한증막의 문을 열었을 때와 같이
성화를 부리며 올라오는 계절이다.
이런 날이라고 시원한 그늘 속에 앉아 있을 수많은 없는 나의 운명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횟골 밭으로 호미를 들고 출근하신다.
시골에서는 농사짓는 일을 하지 않으면 
할 일이 없다기 보다 먹고 살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일하기가 싫었다.
너무 일에 지쳐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하기가 죽기 보다도 더 싫은 지경까지 이르렀다.
 

 
시골에서 농촌일을 해본 사람은 이해가 갈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보리 베기, 보리 타작, 풀하기,
잡초가 나서 산처럼 된 밭매기....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완전히 기합이었다.
기합은 몇 시간에 끝나지만 이 일은 한 여름이 다 갈 때까지다.

밭 지게질을 하다보면
등뼈가 굽어지고 앞정갱이가 구부러지며 양다리가 벌여져서
작은 키가 더 작아질 정도였다.
내가 살고 있는 산중은 보통 4~5백 고지 높은 지역이다.
짐을 지고 다니면 오르막길 아니면 내리막길이라
평지보다 몇 배나 힘이 드는 지게꾼의 신세다.

나는 이런 환경에 살면서 늘상 지옥을 생각했다.
지옥같은 삶이라 지옥 생각이 자주 나고 연상되었다.
이같은 고통의 결과 살아서는 지옥살이를 할지라도
죽어서는 천국살이를 하려고 교회에 더 열심히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1주일에 14번까지 교회에 나갔다.
어느 때 나가면 14번이 되는지 나가본 자는 알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이 한지붕 아래 사는 우리 식구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쓴 고통을 겪었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이 고통으로 인해 생각들이 깊어지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던지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고
부모님과 나만 남게 되었다.
그 때가 1975년도였다.

그래서 나는 78년도까지 월명동 고향집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 전선에 더욱 깊이 뛰어 들어야만 했다.
산 기도할 틈이 더욱 없어지고 성경을 상고하거나 연구할 틈도 더욱 없게 되어
심중에는 고민에 번민을 더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명을 걸고 가야할 길이라
호랑이 같은 아버지의 으르렁거리는 눈총을 받아 가면서도
밤이면 어김없이 나의 시간을 내기 위해 산으로 떠났다.
대둔산, 감람산...잠은 못자도 일을 안하니 밤이 편했다.
밤을 새워 몸부림치며 기도했다.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그러면 낮의 강한 태양보다도 더욱 뜨겁게
내 마음에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인생의 허무함이, 인생의 가치관이
하나님의 그 귀중함이, 미래의 삶의 희망이...
그렇게 기도하다가 견디다 못해 입은 옷
그대로 집으로 가기보다 밭으로 가기보다,
청중이 모이는 곳으로 달려가 외친다.
그러면 그들은 감동의 눈물을 나와 같이 흘리고 만다.
그 때는 일생을 두고 이 일만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또 해가 뜨면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의 가정사였다.

늙어 구부러진 부모님은
내가 없으면 내 몫까지 더 짐을 져야 했기에
그것을 생각할 때 눈물겹기만 했다.
어느 때는 멀리 기도굴에서 보면
아버지가 보릿짐을 지고
횟골의 산허리 길을 돌아오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었다.
하남을 쳐다 보아도 그 자리에 있어싸.
무거워서 꼬무락거리며 황소 걸음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내가 내려가서 한 번 짊어져다 주면 얼마나 쉬우랴.
먹을 때는 같이 먹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
하며 내라가려고 하면
내 마음 한편에서는 미래를 위해 살라는 강한 음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육을 위해 살면 늘 저모양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곤고했다.
'사망과 생명의 양다리에 걸친 몸을 누가 건져내라.'
하고 한탄하는 소리와 한숨 짓는 소리는
산울림이라도 울리게 할 정도였다.

또 창조론의 인봉을 뗀 다리골 기도굴에서 보면
어머니가 홀로 횟골에 앉아 밭매는 것이 눈앞에 휜히 보인다.
특히 감람산 최고봉에서 내려다 보면
실제 눈으로도 가까이 보인다.

내가 내려가서 한 번에 두 골씩 매는데
어머님 홀로 비지땀을 흘려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하늘을 뚫은 다음에라야 내려가야지'
그러다가 결국 한여름 동안 내려가지를 못하고 말았다.
그러니 아무리 배가 고파 창자가 말라도
양심상 집에 들어가 밥을 같이 먹을 수가 없었다.

나의 양식은 생명의 말씀과
산새들이 따 먹는 산의 모든 열매들이었다.
얼마 전 옛 기도 장소에 가서
벚 열매를 제자들과 함께 마구 따먹으며
옛날 수도생활 할 때 먹던 얘기를 해준 일이 이다.
제자들이 벚 열매를 먹으며 너무 맛있다고 하기에
계속 많이 먹어 보라고 했다.

산열매들은 조금씩 먹을 때는 맛있는데
주식을 삼아 먹으면 다르다.
허리끈을 졸라맬 때나 먹을 수밖에 없는 열매라고
나는 깨달았다.

이런 운명의 길이 나에게는 10년, 20년이 아니었다.
아! 그날을 생각해 보니 다 꿈만 같다.
연단과 인생의 시련, 고통과 고뇌...
지금은 섭리 속에서 이런 일들이 오지만
나를 따르는 자들이 있기로
기끔으로 영광을 삼고 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 옛날 고통 중에는
"그가 나를 단련한 후에 정금같이 나오리라."
는 욥기의 성구가기억나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별 희망도 소망도 기대감도 없었다.
나는 연단이라기 보다 고생과 인새으이 팔자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그 옛날의 일들이 내 인생의 시련과 연단이었음을 더욱 실감케 될 뿐이다.
미래에 어떻게 잘 된다 하여도
너무나 하늘이 무너지는 고생과 역경을 겪으니
절망과 포기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무너졌어도
나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은 무너지지 않으셨다.
일도 지나치니 진절머리가 나게 되어 일터로 나가기가 싫었다.
그러니 '먹은 것이 이렇게도 귀한가?
몸부림을 쳐야만 먹게 되니
그렇게 먹고 사느니
차라리 아예 먹지 말고 몸부림도 치지 말아야 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심령의 기쁨만을 추구하다가
결국 먹는 것을 전폐하게 되었고
기도와 찬송, 성경 읽기만으로 나날을 보냈다.
먹기를 폐하니 육이 무너졌고
영의 기쁨도 육의 기반이 깨지니 지속될 수가 없었다.

결국 한계를 넘어가지 못하고 절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 때 육도 닦고 영도 닦아야 됨을
스스로 희미하게나마 절가메 되었다.
육도 살리고 영도 살려야
영육의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완전 구원, 이상적 구원, 곤고를 벗아난 구원임을
크게 깨달았다.
인생편하게 산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깨달았고 겪어 보았다.
인생 편하게 사는 사는 사람들이
그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들인지 알게 되었고
우러러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쥐구멍에도 해뜰 날이 있다는 이야기만이
나의 마음에 실가닥 같은 희망을 주었다.
서초동 방초교회에 시무하시는 광석 둘째 형님은
고향 떠난 20년이 넘은 오늘에까지 명절 때도
고향 땅에 가기 싫다는 이야기를 한다.

까마귀도 10년이면 고향을 찾아가 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얼마나 뼈를 깎는 고생을 하였으면 안가겠다고 하겠는가?
부모는 물론 장형으로부터 막내까지
모두 불쌍하게 갖은 고생을 하며 지낸 골짝이었다.

시대가 그러해서 우리 뿐만 아니라
동네방네 모두 비슷한 고생과 곤욕을 치루면서 산
그 때가 눈에 선하고 훤히 생각이 난다.
 
어머니는 그렇게 밭고랑에서 여생을 보낸 결과
허리 수술까지 하게 되어
지금은 새우 허리가 되어
어린아이처럼 걸으시며
결국 반불구가 되어 여생을 만족히 지내시고,
아버지는 금광산 굴에서 40여 년을 보낸 끝에
호흡 지장으로 87세 고령으로 여생을 매듭짓고 계시다.

나는 그렇게 못먹고, 못자고, 못 입고 번뇌와 고생을 했지만
오늘날 내 나이 50이 넘는데도
철구의 몸이 되어 초인 소리를 들어가면서 산다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큰 은혜임을 알고
그 때의 고통의 역사가 연단과 단련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젊어서는 연단과 시련을 사서도 해야 된다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성현들의 말씀같이 들리고
시인(是認)하게 된다.
나와 같이 쓴 맛 단 맛을 보며, 뜻을 좇으며 사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 순간도 그 늠름한 모습에 박수를 쳐주며
격려를 해 주는 마음 간절하다.

용기를 내고 낙심치 말며 꾸준히 지속하기를 바란다.
금같이 연단하여
나와 같이 시대 뜻을 펴서
이 지상에 하나님의 이상세계 뜻을 이뤄야 되겠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따르는 자들이 잘못했을 때
금수같이 매를 대지 말고,
말로도 하지 말고,
그가 할 수 있도록 연단을 시키고
수련을 시켜주라고 하셨다.
역사도 그러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수련과 훈련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게
연습시켜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생명시 하며 행하여 보니
정말로 그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었다.
틀림없이 그렇게 바라는 대로 되고 말았다.

못하면 책망만 하지 말고
하도록 가르쳐 주고
가르쳐도 못하면 수련, 훈련, 연습을 시키라는 것이었다.

내 인생 젊음의 날 하나님은 나를 책망하기보다,
매질보다 먼저 가르쳐 주고
연단과 수련을 시켜준 것을 실감케 되었다.

가끔 나에게도 하늘로부터 큰 매가 있을 때가 있었는데
금수같이 행하였을 때였다.
우리 인생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나만 사랑하기 보다 모두 다 사랑하는데
누가 더 하나님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제 2의 사랑이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일이 크면 시간도 크게 들어가게 되고
큰 역사의 사역을 맡게 되면
문제도 그만큼 크게 일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맡은 큰 일을 피해
요나처럼 도망쳐서도 안 될 운명이다.

안된다고 포기하거나 어렵다고 돌아서지 말고
마음을 무너뜨리지 말고 뛰고 달려야 되겠다.
나와 같이 뛰고 나와 같이 헤친다면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자 같아
비가 오고 창수가 나되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법칙에서 벗어난 만사의 일들은
모두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 같아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면 그 무너짐이 심할 것이다.
 
 

[00JMS정명석 목사님의 1분 묵상]생활 속에서 자기를 변화시켜라

 
<글씨 한 자>를 쓰더라도 '한 점, 한 획'까지 잘 써야 좋은 글씨가 된다.
<글>을 쓸 때도 '한 단어, 한 문장'까지 모두 잘 써야 '문맥 전체'를 잘 쓰게 된다.
<말>을 할 때도 한 단어, 한 구절' 까지 잘해야 '그 이야기 전체'를 잘한 것이다.
'생활 속의 의로운 작은 행위 하나하나'는 '글 한 자'와 같고,
''한 단어'와 같고, '한 문장'과 같다.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자기 인생>을 생각해서 <자기>가 '생활 속'에서 잘해야 된다.
먼저 '생활 속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부터 고쳐라.
'생활 속'에서 자기를 만드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이 표적이며 기적이다.
 
 
 

[JMS정명석 목사님의 영혼의 보화]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니 위대해 지다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이예요.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 중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라고 해요.
 
다빈치는 그 순간을 그림에 담았어요.
그 때 다빈치는 이 벽화를 완성하는데 3년이 걸렸어요.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위해 다빈치는 자주 밀라노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의 각각 다른 표정들을 연구했어요.
또 성경을 읽으면서 제자들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심정을 깊이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품을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드니 위대한 작품이 나오게 되었어요.
다빈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담아내니 위대한 작품이 나오게 되었고,
위대한 과학자, 예술가가 되었어요.
 
우리를 사랑하시며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을 잊지 말고, 늘 사랑과 감사를 드려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사랑과 감사를 드렸을 때,
마음 속에 평안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