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8일 일요일

[ JMS정명석 목사님]정명석 총재에 관한 진실

정명석 총재에 관한 진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맹인모상[盲人摸象])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지적한 말입니다. 현대 사회는 그 착오를 극복하고자 비교적 다수의 의견을 종합한 통계(statistical reasoning)방식을 사용하니다만 그 역시 진실을 비추기에 한계가 없진 않습니다. 더욱이 현대 사회는 소수의 언론인이 여론의 판단을 유도함으로써 자칫 언론에 의해 다수의 의견도 조장될 수 있다는 약점도 내포합니다. 바로 정명석 총재의 경우가 그런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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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9년 동안 비도덕적인 종교인으로 언론에 소개되어 왔던 정명석 총재입니다.그러나 언론이 보여준 모습이 정명석 총재의 참 모습인지 일반인은 올바로 분별하기 힘듭니다. 정명석 총재에 대한 정보를 오직 언론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다양한 정보에 대한 접근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또 언론인들이 비교적 사회의 지식인층이라고 해서 그들이 보는 것이면 모두 코끼리의 전체 모습이라고 맹목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정명석 총재가 처음으로 이 사회에 소개된 것은 1999년 초입니다. 당시 서울방송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성추행, 성도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 말세론적 조교관, 통일교 아류 등 종교인으로서는 매우 수치스런 모습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 후, 정명석 총재의 세계 선교 활동으로 인해 서울 방송의 추적 취재가 진행되었고 이어 '도피행위'라는 딱지도 하나 더 붙었습니다. 우선 여기까지 일을 짚어보겠습니다.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가 주장한 내용 중 성추행에 관해서는 재판부에서 시비를 가리게 되었고 이후 정명석 총재는 세차례 귀국하여 검찰의 조사에 성실한 답변을 하고 무혐의로 재출국했습니다. 이로써 당시 제기되었던 성추행 의혹은 사실상 일단락되었습니다.

   방송 보도는 재연 화면과 얼굴을 가린 자칭 피해자의 자극적인 증언도 담아 매우 실감있게 구성을 했으나 재연 장면은 현실성을 벗어나 픽션의 인상을 남겼고 자칭 피해자의 증언 근거는 매우 미약했으며 그가 당사자인지의 여부도 불확실했습니다. 

   또 성도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 문제, 방송에서는 정명석 총재가 성도들에게 앵벌이를 시켰다고 하는 매우 과격한 표현마저 사용했습니다. 사회에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금전 문제입니다. 성직자의 성(性)과 금전 관계는 매우 자극적입니다. 여론의 폭풍같은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너무도 좋은 소재였습니다만 결국 이 주장도 근거가 없이 유야무야되었습니다. 본 단체의 회원 중 그 누구도 속칭 앵벌이에 동원되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종말론적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정명석 총재가 1999년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다고 강조하며 신앙에 몰입할 것을 종용했다는 식이었습니다. 종말론적 신앙관은 건전한 사회인으로 하여금 현실의 삶을 외면하고 내세에 전념하게 하여 사회 부적응자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신앙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방송은 그렇게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를 사회악으로 매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정명석 총재의 설교나 교리, 그리고 본 단체의 신앙 활동을 들여다보면 어느 곳에서도 종말론적 신앙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말세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가르치며 보다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신앙생활을 주창한 총재입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정명석 총재에게 종말론적 사교주의 이미지를 애써 덧씌우려 했습니다.

   서울방송은 또 정명석 총재를 통일교의 아류로 폄하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도에서 그런 평가를 내려준 사람은 정명석 총재를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본 단체의 교리나 신앙  신조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나 데려다가 증인이라고 세우고 전혀 공인받을 수 없는 사람의 말을 증거로 삼아 평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언론은 객관적인 자료를 재공하고 그 판단은 시청자가 하는 것이 정상적인 보도 태도일 것인데 말입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생활이며 체험에 바탕을 두는데도 언론은 바깥에서 흘깃 바라본 외양만을 보고 본 단체의 신앙을 판단해 버리는 오만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정명석 총재를 죄인으로 부각시키려는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정명석 총재를 향한 언론의 첫 접근은 객관성을 한참 비껴갔습니다. 당시 담당 피디는 객관성을 우지하기 위해 정명석 총재, 혹은 본 단체의 지도부의 의견을 반영하려했다 합니다만, 결국 본 단체는 법원을 통해 반론보도 판결을 얻어냈습니다.  이는 방송 보도 내용에 본 단체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또한 본 단체의 요청이 서울방송으로부터 묵살당했던 터라 법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더욱이 서울방송은 정명석 총재가 '십일 조(열의 하나)'에 관한 설교를 하던 중 '열의 하나 전도 해'라고 한 말을 '여자 하나 전도 해'라고 자막을 사용해 보도함으로써 정명석 총재가 여성에 집착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습니다.

   왜 이토록 서울 방송은 정명석 총재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집착했을까요? 물론 언론인에게 진실을 밝히려는 정의감이 있다는 것을 존중한다 해도, 당시의 취재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가지고는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사회의 '공공의 적'으로 이미지를 꿰맞춰야 하는 강박관념에 몰려 정도를 벗어났음을 감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명석 총재의 부도덕을 고발한다는 제보자의 주장은 언론인의 정의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한 단체의 지도자와 그를 상대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사람들. 이 둘을 비교하면 당연히 사회 정의를 꿈꾸는 젊은 언론인의 가슴은 소수의 약자가 뿌리는 눈물에 출렁거렸을 것입니다. 거기에 정명석 총재에 대해 악의를 품고 있는 그 소수의 조직적이고도 계획적인 움직임이 더해져 호사가들의 입맛을 다시게 할만한 특종으로 키워졌습니다.

   정명석 총재로부터의 성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얼굴에 마스크를 하고 기자회견을 자청한 여성들 앞에는 항상 김도형과 김영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피해자라는 사람들에게 정명석 총재를 공격하는 방법을 제시하거나 때로는 자신들이 직접 그들의 수장을 자임하며 정명석 총재 공격의 선봉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방법은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것들이었습니다. 욕설과 폭언, 입에 담기에 부끄러운 상스런 말들이 바로 그들이 보여준 내면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들의 인격이하의 행동들은 여러 차례 법원으로부터의 경고와 처벌을 받았습니다.

   정명석 총재에 대한 '성적 부도덕'이라는 공격.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명석 총재가 철저하게 대응하는 요소입니다. 본 단체의 신앙 생활의 원칙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성적 순결성입니다. 사라은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데 가장 고귀하고 핵심적인 요소인 만큼 올바로 알고 감당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에 눈을 뜨기 전에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을 바로 알고 신앙으로 사랑을 배우자는 것이 총재의 제 일의 가르침입니다.

   총재로부터 시작된 본 단체는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진리탐구의 열정이 많은 연령층입니다. 반면 가장 혈기왕성하고 명예와 성공에 대한 야망도 많은 때입니다. 바로 그런 젊은이들의 진리탐구 열정을 성경 말씀으로 채워주었던 총재였습니다. 혈기왕성한 청춘들에게 참사랑의 도를 가르쳐 일탈의 유혹을 다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도 자신의 야망과 사랑을 접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본래 총재와 함께 가는 길은 구도의 길이요 헌신의 길이 우선이나 젊은 혈기로 자신들의 야망과 욕정을 제어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총재를 따르며 야망을 성취하고 명예를 얻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총재의 가르침은 연륜이 깊어갈수록 선행과 헌신의 모범을 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자들은 결국 총재를 떠나기도 했고 자신들의 지난 세월들에 대한 상실감을 보상받으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총재의 성품과 본 단체의 체제에 대해 익숙했기 때문에 어떻게 공격하면 총재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바로 피해자요 제보자라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김도형, 김영수도 그들 중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목적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자 그 모든 탓을 총재에게로 돌린 그들은 돈으로 보상받고자 했음이 여러차례 드러났습니다. 지난 2005년에 김도형이 소위 피해 여성들의 고소 취하와 자신과의 화해 조건으로 정명석 총재에게 20억 원을 요구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는 애초부터 <반정명석 총재그룹>을 이끌던 김도형의 활동 목적이 결국 일확천금을 얻어보겠다는 야심이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며, 소위 피해 여성들의 고소와 취하 여부도 김도형 한 사람이 좌지우지할 정도로 그 여성들의 활동 역시 김도형의 목적에 부합하여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본 단체는 정명석 총재를 고소한 한 여성이 <반정명석 총재그룹>으로부터 '정명석 총재를 고소하면 유학 경비를 지원해 주겠다.'는 재의를 받았다는 정보도 가지고 있습니다.

   피고(서울방송)은 이 사건 화해권고결정 확정일 이후에는 프로그램 명칭여하를 불문하고 소외 김도형, 김영수의 직접적인 제보 또는 자료제공 등에 의한 원고(기독교복음선교회)측에 관한 방송을 제작, 보도하지 아니한다.

   이 문구는 2004년 본 단체와 서울방송사이에 이루어진 화해 권고 결정문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 동안 서울방송에서 주 취재원으로 활동했던 김도형 김영수의 본 단체에 대한 자료 제공이나 제보가 옳지 않았다는 것을 법원에서 판단하고 서울 방송에서 인정했다는 의미입니다. 그 동안 거의 모든 언론 보도는 바로 이 두사람에 의한 제보에 기초를 두었습니다.

   아울러 위 결정문에서는 서울방송이 본 단체에 관련되어 보도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대해서 48시간 전에 그 내용을 본 단체에 고지하고 보도 내용에 대해 5% 분량으로 본 단체의 반론을 방송하도록 명시되어있습니다.
   이는 해당 언론사의 임원의 고백대로 언론이 백기를 든 것과 같은 것이며 그 동안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에 대한 서울 방송의 보도 태도가 지극히 편향적이었음을 법원과 서울 방송 스스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03년에는 정명석 총재와 본 단체에 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김영수라는 사람이 당시 홍콩에 머물고 있던 총재의 집을 습격해 구타를 하며 이를 촬영해 언론에 제보하고 또한 인터넷에 유포하며 심각하게 총재를 조롱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서울방송의 <세븐 데이즈>에서는 이를 그대로 보도했고 본 단체의 회원들은 그 동영상이 심지어 인터넷 상에서도 유포되고 있는 사실을 알고 극도로 흥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단체의 회원들은 감정을 억누르며 신앙인의 본 자세를 굳게 지키려 하였으니 그 중 네 명의 대학생이 분한 마음으로 김도형과 김영수를 찾아갔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김도형과 김영수를 만난 자리에는 <시서저널>의 신호철 기자가 와 있었습니다. 신호철 기자도 역시 김도형 김영수의 제보를 토대로 정명석 총재에 대한 기사를 작성코자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호철 기자를 알아볼 턱이 없었던 본 단체의 청년들은 바로 김영수 김도형과 몸싸움을 하게 되었고 그 왖중에 <시사저널>의 신호철 기자는 그들과 한 패로 오인받아 몸싸움에 휘말렸습니다.
 
   물론 신앙인으로서 몸싸움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못된 일임을 변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도 같은 스승을 나이도 한참 어린 사람이 폭행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인터넷에 그 장면을 유포하면서 모욕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도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비정상일 것입니다.

   이런 악연으로 신호철 기자는 김도형, 김영수에 필적할 만한 반 정명석 총재 집단의 선봉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의 노골적인 자세는 그의 기사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일단 본 단체를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며 기사의 논조를 고착시켰습니다. 그가 홍콩에 정명석 총재가 거주했던 집을 사진으로 게재하면서 정명석 총재가 홍콩의 호화주택에서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정명석 총재는 사진에 게재된 집의 2층에 방 두개를 세를 얻어 쓰고 있었습니다. 기자의 붓놀림 하나로 지극히 검소한 삶이 지극히 호사스런 삶으로 탈바꿈해서 여론에 전달되었습니다.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되도록 정명석 총재를 부도덕하게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총재는 홍콩 이민국 감호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올 때 홍콩 달러 10만 불을 지불했습니다. 이는 한호로 약 천 만 원이 약간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호철 기자는 굳이 미화 10만 불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약 1억원의 금액으로 실제와 8배 정도의 차이가 나는 분명한 오보였습니다.

   물론 사안의 핵심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이 같은 언론의 의도적인 매도행위가 암암리에 정총재와 본 단체를 지속적으로 옭아매왔고 설상가상으로 이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정총재와 본 단체의 목소리에 귀 길울이지 않게 하는 소위 '왕따 만들기'의 효과를 톡톡히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본 단체와 정명석 총재에 대한 언론의 그 동안의 시각도 상당히 기울어있었음을 부인하기 힘들 것입니다. 정명석 총재에 대한 언론과 또 그 언론에 의해 형성된 여론은 처음부터 이렇게 부정적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 보도태로를 지금까지도 이어오면서 몇몇 언론은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명석 총재가 빨리 한국으로 돌아와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점잖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일반인에 보여주는 언론의 공명정대를 가장한 제스쳐일 뿐 이미 총재가 돌아오면 뭇매를 들이댈 삐딱한 몽둥이를 감추고 있음을 본 단체는 충분히 헤아리고 있습니다.

   정명석 총재는 1999년부터 세계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총재는 1978년 복음 사역을 시작한 때부터 20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하고 그 후로는 세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 시점이 바로 1999년 이었습니다. 그것이 공교롭게도 서울방송의 보도 시점과 맞물렸고 총재의 세계 선교는 마치 소송과 언론 보도를 피하려 했던 것으로 오인되었습니다. 오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정명석 총재가 1999년과 2000년 2001년 입국해 검찰 조사에 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 차례에 걸쳐 조사에 응하는 그 시간들은 정명석 총재에게는 참으로 소모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이미 세계 선교를 위해 헌신ㅇ르 각오하고 출국한 발걸음을 다시 돌이키기를 세 차례나 한 이상 더 이상 이같은 일로 무의미한 시간을 쓴 다면 본 단체에 큰 손해를 끼칠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한창 선교에 불이 붙은 외국 현지에서는 그나마 총재로부터 시작된 선교의 열정이 자칫 수그러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습니다. 정명석 총재에게 주어진 한 시간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20만 회원들의 삶의 방향이 뒤바뀌고 때로는 한 생명의 죽고 사는 문제까지 좌우되기도 합니다.

   이에 정명석 총재는 결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어떤 고소 고발로 총재의 발길을 잡아두려 한다 해도 거기에 일일이 대응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혹 여러가지 오해를 받고 누명을 쓰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소명을 이루는 것이 더 우선이었습니다.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단체의 수장의 위치며 또한 세속의 관심보다 하늘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사명자의 노정이었습니다.

   사람은 사명과 위체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판단의 가치기준이 다릅니다. 정명석 총재가 세상이 비웃음거리가 되고 불신과 모욕을 감내하며 자신의 길을 간 이유는 그가 진정한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정명석 총재 스스로도 어찌 오해를 벗고 싶지 않겠으며 타인의 찬사를 듣고 싶지 않겠습니까마는 자신의 오해를 벗기 위해 써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당장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료하는데 쓰는 것이 더 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영광과 당당함을 갈망하여도 당장에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듣고 처절한 험곡의 길을 택한다면 그가 진정한 신앙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의 큰 인물들 역시 보이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당당함의 길에 서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도 모르는 수치와 비굴함의 길을 간 선례를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로부터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축복권을 훔쳤다는 비난을 받으며 에서의 분노를 피해 다른 지방으로 달아나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관점과 하나님의 길을 가는 사명자의 관점은 너무도 상이했습니다. 하나님의 뜻 길을 가는 야곱은 사람들이 보이듯 치사하고 비굴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로부터 장자에게 전해지는 신앙 축복권을 귀하게 여겼던 사람이며 그 신앙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갈망으로 장자의 권한을 사모했던 것입니다. 반면 형인 에서는 물질에 치우친 사람으로서 당장 허기진 배를 채우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 권한을 쉽게 버릴 만큼 하나님이 주시는 신앙의 전수를 경시했던 사람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은 에서보다도 야곱을 주인공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형제들의 시기심으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그는 외국에서도 충성을 다 하는 삶을 살았으나 억울하게도 상전의 부인을 겁탈하려했다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 부인이 요셉에게 불륜을 요구했으나 요셉이 거부하자 부인이 자기의 부정을 덮기 위해서 요셉에게 죄를 덮어씌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누명을 쓰게 하면서도 요셉을 통해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뜻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엔 부정하고 비굴한 모습이지만 성경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지키기 위해 소리없이 모욕과 비난을 감내하며 갔습니다. 다윗이 그랬고 나아가 예수님도 그런 길을 가셨습니다. 그분들의 관심과 가치관은 사람의 정서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정서에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본 단체라고 해서 세상에서 영광스런 모습을 받아가며 갈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이 왜 불가능하겠습니까? 적당히 사회의 입맛에 맞는 관심사에 타협하며 총재와 단체의 안전한 성장을 도모할 방법도 찾을 수 있겠습니다만, 총재 역시 사람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입장이라 비난 받으며 내몰리고 누명 쓰며 투옥되는 전처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전라북도에 있는 대둔산은 본 단체의 수련원과 매우 가까운 거링 있으며 정명석 총재가 젊었던 시절에 자주 올라 기도도 하고 등산객들에게 길안내를 해 주던 곳이었습니다. 1991년 여름, 총재는 성도들과 함께 대둔산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산을 오르는 길이 매우 좁고 험하여 암벽 등반을 목적으로 한 전문 산악인들이 아닌 일반 등산객에게는 무척 위험한 곳이 많았습니다.

   정명석 총재는 등산을 하던 중에 길이 좁은 곳은 넓히고 경사가 심한 곳은 주변의 나뭇가지를 잘라 난간을 만들었습니다. 어느새 산 정상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잊은 채 등산객들이 자칫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로 하루 종일 길을 닦고 손잡이를 만들어 세웠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본 단체는 산림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하고 언론에는 본 단체가 산림을 훼손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땀 흘린 봉사의 대가는 이렇게 되돌아왔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개인이 임의로 하지 말고 관계 기관에 알려서 처리하도록 법저차를 밟았어야 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했더라면 총재는 굳이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또 괜한 시비에 휘말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절차를 밟아 합법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기약 없는 날 동안 험한 산길은 여전히 등산객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정명석 총재의 다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장 사람들이 해를 입을 수 있는 위험 요소를 보면 법의 절차를 기다릴 만큼의 여유를 버리고 사람의 안전을 위해서 뛰어듭니다.관계 기관이 사람의 생명보다도 산림범을 지키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면 정명석 총재는 산림법보다도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것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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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바로 사람의 생명이며, 그 생명이란 육적인 것만 아니라 정신적인, 영적인 생명까지 포함합니다. 총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신앙인으로서 사람의 영적 육적 생명을 가장 큰 가치로 두었습니다. 평생토록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어떤 어려움에 처할지 미리 가늠해 보기도 전에 열심을 내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명예와 부, 격식과 품격을추구하고 이해타산에 밝은 사람들과는 가치관이 다르고 행동 양식이 달라서 생긴 오해도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명석 총재의 해외 활동이 불법이라고 하고 도피라고도 합니다만, 총재의 행보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것과 사뭇 다릅니다. 총재가 한창 수련원 개발에 전념하고 있던 어느 날, 수련원 주변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수련원 개발 공사를 물리적으로 막는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수련원 개발에 매우 호의적으로 협조했던 마을 주민들이었던 터라 뜻밖의 행동에 총재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직접 주민들을 만나 이유를 들어보니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저 섭섭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당시 사태의 진정한 이유를 알고자 하나님게 깊은 기도를 했습니다. 결국 얻은 답은 전국에 있는 성도들의 삶과 마음을 살펴주는 일이 더 시급하니 수련원 개발을 잠시 멈추고 교회를 돌아보라는것이었습니다. 총재는 그날로 개발 작업을 멈추고 짐을 챙겼습니다. 그 날의 사건이 사람들이 보기엔 총재가 하던 작업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겠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정명석 총재의 발걸음을 이끌기 위해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정명석  세계 선교 역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계획하심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출입국의 모양새가 어떠한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범부의 관심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눈을 맞춘 사명자에게는 비난의  가시밭길이거나 영광의 면류관길이거나 모두 단순한 길의 의미일 뿐입니다.

   총재의 첫 발걸음은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기독교 국가들이 국가들이 즐비한 대륙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정작 총재가 경험한 유럽인들의 신앙은 전혀 기대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앙만ㅇ하고 성취하려는 열정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생활 속에 한 습관으로 굳어져 버린 기독교의 형식만 남아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았던 유럽행이었지만 기독교 현실을 목도한 정명석 총재는 하나님의 뜻을 눈치 챘습니다.
20년 전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혈혈단신으로 유럽대륙에서 죽은 기독교에 생기를 불어넣기를 각오했습니다. 동양인으로서, 어리디 어린 유럽 젋은 아이들의 경시와 홀대를 무릅쓰고 다가서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진심과 사랑으로 다가선 지 한 해가 지나서 드디어 열매를 맺었습니다. 프랑스, 독일, 이태리, 영국. 이 네 개의 나라에서 동서양의 젊은이들이 모여 민간 차원의 문화 예술과 스포츠 교류로 평화 대회를 연 것입니다.

   평화 대회는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정부나 기업에서 목표를 두고 하는 일도 아닌데, 그저 아시아의 한 초로의 신사가 다가와 어울리며 웃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동서양의 젊은이들이 해마다 자바적으로 모여 서로 속 깊은 정을 나눌 수 있을까? 향략도, 퇴폐적인 방종도 없는 건강한 교감이 이 시대에 이렇게 가능한가? 총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증언했고 그들의 가슴 속에 뇌사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하나님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에서 기념적인 발자취를 남긴 후 중국으로 향한 정명석 총재의 행로는 21세기의 잠룡을 다스리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정해졌습니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세계 인구의 20% 이상이 모여사는 나라, 세계 경제와 외교 판도를 쥐락펴락할 만한 힘을 키우고 이는 나라, 그래서 모두 관심을 갖고 모여드는 나라가 바로 중국입니다. 그러나 정작 총재가 바라본 것은 중국의 힘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삶이었습니다. 교세를 늘려보겠다거나 경제 발판을 다져보겠다는 시시콜콜한 관심이 아니라 13억의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관심이었습니다.그래서 총재는 중국에 있어야 했고 그들의 삶의 현실을 낱낱이 들여다보아야 했습니다.

   속 족은 이는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나 활동할 것이지 굳이 오지랖 넓게 종교성도 없는 남의 나라까지 가느냐고도 할 것입니다만 이는 성경 한 구절조차 읽어보지 않은 사람의 단견입니다. 구약 성경 요나서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니느웨의 백성들을 위해 선지자 요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그들을 회개시켜 멸절의 위기를 벗어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 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정명석 총재에게도 중국인은 세계의 관심을 끄는 민족이라거나 선교의 대상이기 전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귀한 사람들이어서 의미있었던 것입니다.

   정명석 총재를 따르는 본 성도들은 20만회원이라는 단체의 규모에 위안을 받고 갖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단체보다 자유롭다는 것도,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도 총재를 따르는 이유로 삼지 않습니다. 세간에 잘못 알려진 총재에 관한 루머가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더욱 아닙니다.

   본 성도들은 정명석 총재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알았습니다. 그의 말씀이 지금껏 경험했던 어떤 종교가나 학자의 이론보다도 하나님에 대해서 더욱 정확하게 밝혀주는 말씀인 것을 알았고 그의 가르침이 인생을 바로 인도하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능력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보며 총재 스스로가 그 말씀대로 살아왔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론 또는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들, 그리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명석 총재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서 안다고 하겠으나 본 성도들은 정명석 총재를 오랫동안 만낫고 상담을 했고 그의 기도를 받으며 살아왔던 경험으로 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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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단체 회원들은 모두 이 사회에서 당당한 직업을 가지고 건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에 어려움이 닥치면 솔선수범하여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술과 담배, 마약이나 불건전한 성문화 퇴치에 앞장서는 모범적인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지 도덕적인 양심을 따른 것만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이루며 사는 것이라는 총재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무분별한 정보 유출 사고로 인해 검게 채색되어진 정명석 총재의 참 모습은 건전한 시민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스며든 마녀사냥의 찌꺼기를 닦아낸 후에야 비로소 바로 보일 것입니다. 언론이 스스로 주장하듯이 진실을 바로 알리기를 원한다면 정명석 총재에 대해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편향적인 정보 유출을 멈추고 오염물질을 제거하여 진실을 투명하게 분별할 수 있도록 지극히 객관적인 자리에 멈춰 서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정 능력을 가진 거대한 바다에 유화제를 뿌려 2차오염을 일으키는 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언론은 정명석 총재에 대한 성급한 판단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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